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르마니아 전쟁 (문단 편집) === [[토이토부르크 전투]]와 로마령 게르마니아의 붕괴 === [youtube(imEyKWMDM2o)] 바루스는 게르마니아 사령관으로 부임한 뒤 게르만족의 로마화 작업에 착수했다. 그는 각 부족들에 관료를 파견하여 로마법에 준수하라고 명령하고 부족장들의 정책에 여러 번 간섭했다. 게다가 게르마니아에서 찾기 힘든 귀금속으로 세금을 낼 것을 강요해 게르만족의 불만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. 당시 로마군에 오랫동안 복무했고 바루스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는 로마군을 몰아내고 통합된 게르만인의 국가를 세우고 왕이 되고 싶었던 [[아르미니우스]]는 이러한 분위기를 읽고 반란을 꾀했다. 장인 세게스테스는 아르미니우스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고변했지만, 바루스는 이를 무시했다. 아르미니우스가 배신할 리 없다고 굳게 믿었고, 아르미니우스에 대한 세게스테스의 증오를 알고 있었으며, 시리아와 유대에서 총독으로 일하면서 모함을 통해 경쟁자를 제거하는 행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. 아르미니우스와 공모자들은 일리리아 대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주의깊게 연구하고, 이로부터 로마군을 무찌를 방안을 모색했다. 그들은 곧 로마군을 함정으로 유인하여 최대한 섬멸하기로 결의했다. 서기 9년 9월 어느 날, 로마에 복속된 한 마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. 아르미니우스는 바루스에게 로마군의 위용을 보여줘야 다시는 반란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할 거라고 조언했다. 바루스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, 휘하 3개 군단과 6개의 보조군 대대, 3개의 기병대 중대를 총동원하여 반란 진압에 나섰다. 그러나 이들은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아르미니우스가 매복시킨 게르만 군대에게 습격당해 전멸했고, 일부 기병만이 가까스로 탈출했다. 그 후 게르만족은 숙영지와 정착촌에 남아있는 로마 군인과 민간인들을 습격해 모조리 학살했다. 이리하여 기원전 12년 원정을 시작한 이래 20년간 밀어붙였던 게르마니아 원정의 성과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